우리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하는 잔인한 진실 2

실시간 종합 커뮤니티 · 조회 17,504회 · 댓글 47개 · 2010-01-17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무너진 폐허 위에서 연합군과 인류가 마주해야 했던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400만 명에 육박하는 국방군, 1,000만 명에 달하는 나치 당원, 그리고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각자의 톱니바퀴 역할을 하며 체제를 굴러가게 했던 수많은 관료와 기술자들. 그 거대한 범죄의 사슬 앞에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유죄로 묻고 처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딜레마였습니다. 당시 서독의 초대 총리였던 아데나워는 국가 재건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서 한 가지 타협을 선택합니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어쩌면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들리는 명분을 내세웠지요. 당장 멈춰버린 국가의 행정과 사법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 체제 안에서 일했던 전문가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사면법과 131조법이 통과되었고, 한때 나치 체제에 부역했던 수많은 엘리트들과 판검사들은 조용히 과거의 짐을 벗어던진 채 다시금 국가의 요직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장의 현실적인 필요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공동체가 반드시 짚고 넘어갔어야 할 뼈아픈 과거의 죄상들은 그렇게 서서히 은폐되고 봉합되어 갔습니다. 저는 저 먼 과거 독일의 풍경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과 서늘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검찰 개혁'이나 '내란 청산'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거창한 구호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으로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권력이 진정으로 메스를 대어야 할 곳은 부패를 잉태하는 시스템 그 자체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권력자들은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을 쥐고서도, 그것을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과 안위를 방어하는 든든한 방패로만 기형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제 매불쇼에서 박은정 전 검사가 매섭게 지적했던 '면죄부'라는 단어가 뼈아프게 겹쳐집니다. 그는 현재의 권력과 사법 시스템이 살아있는 권력의 이너서클을 철통같이 방어하는 '면죄부 발급소'로 전락해 버렸다는 서늘한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과거 아데나워 정권이 체제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나치 부역자들에게 대대적인 사면법을 남발했듯이...... 가장 공정하고 날카로워야 할 사법의 잣대가 내 편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지고 구부러지는 이 촌극은, 과거 청산을 유예하고 타협했던 1950년대 서독의 그림자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이 면죄부 시스템이 진정으로 무서운 이유는, 오직 위를 향해 맹목적으로 충성하면 어떤 잘못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끔찍한 시그널을 조직 전체에 각인시킨다는 점입니다. 독일의 나치 체제 아래에서 누군가는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라 가스실의 밸브를 열었고, 누군가는 수용소로 향하는 열차의 배차 시간표를 작성했습니다. 그들은 훗날 전범 재판에서 "나는 그저 주어진 명령과 실무에 따랐을 뿐" 이라며 항변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권력 주변부에서 벌어지는 풍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살피며 오직 '절대 충성'을 맹세한 이들만이 인사 검증의 문턱을 넘어 요직을 차지하고 당권을 차지 합니다. 그들은 시스템의 합리성이나 국민을 위한 공리가 아니라, 오직 위를 향한 맹목적인 복무를 시스템의 미덕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권력이 시스템의 공정성을 독점하고 사유화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 안에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일이 일상화될 때, 조직 내부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권력의 정점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충성했던 이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정작 그 권력은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하위 실무자가 한 일이다"라며 너무나도 차갑게 선을 긋고 방어막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면 어제까지 동지라 불렀던 아랫사람조차 언제든 소모품처럼 잘라버릴 수 있다는 그 냉혹한 꼬리 자르기의 속성. 그것을 목도한 실무자들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것은 깊은 배신감과 '각자도생'의 본능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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